사랑과 나눔으로 서로 어울리는 이웃사회 영주
노인장기요양 보호를 위한 사회보험의 필요성
- Long Term Care를 중심으로 -
I. 들어가는 글
장수를 추구하는 것은 생존본능과 관련된 것으로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들어 인간의 이러한 본능은 빠르게 진척되어 서구 산업사회의 경우 평균 80세를 넘나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인간의 장수사회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그에 따른 주변 여건들이 그리 밝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산업화된 사회일수록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한편 출생률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사회 혹은 한 국가의 인구구성이 노인세대에 편중되어 전체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일례로 인구 비율이 적정하게 분포되어 있을 경우 사회의 기간세대에 의한 노년세대와 자녀세대의 부양이 가능하여 사회의 유지가 수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노년층 인구가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젊은 세대의 비중이 줄어들면 이러한 자연스런 사회유지 기능에 장애가 생기고, 우선적으로 노인에 대한 부양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노인 인구비중의 증가로 사회 전반에 대한 인프라시설들의 변화와 개선이 요구되는 것이다. 평균수명의 연장과 노인인구의 증가는 부양세대의 위축과 더불어 노인부양, 특히 고령층과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노인들의 부양을 더 이상 일반 가정에서 책임질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물론 의식상의 변화도 큰 역할을 하겠지만, 그러나 의식 이전에 물리적으로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오늘날 노인들이 처해있는 현주소라 해도 과원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노년기가 인생의 황혼기로서 풍부한 경험과 삶의 지혜를 갖고 연장자로서 존경을 받아왔던 과거의 높은 위상은 현대사회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 노인의 인구학적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의 가족구조의 변화, 서구사상화 문명의 유입에 따른 새로운 가치관의 등장 등이 다양한 노인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고양곤, 2002).
특히 고령후기 노인들을 위한 장기요양보호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큰 관심을 갖고 준비해야 할 분야로 급격히 부각되고 있는 현실에서 새로운 사회보험의 도입에 대한 연구는 그만큼 타당성 있는 분야라 할 수 있다.
즉 장기요양보호를 위한 사회적 차원의 해결방식이건 아니면 개인적 해결이건 우선 그에 걸맞은 시설이나 서비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소요되는 경비마련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러한 부분을 새로운 사회보험을 통해서 해결해 보자는 것이 본 연구의 주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독일의 경우 무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토론과 검토를 거쳐 새로운 사회보험을 통한 수발보험을 지난 1995년부터 도입하여 실행에 들어갔다. 수발보험의 목적은 노령이나 기타 질병에 의해 거동이 불편하여 타인의 도움, 수발을 필요로 한 사람들이 증가할 것에 대비한 시설 및 비용에 대한 사회적 안전책을 사회보험 방식을 통해서 마련하자는 것이다. 물론 노년인구의 증가에 따른 수발문제를 꼭 사회보험 방식을 통해서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본 연구에서 노인인구와 평균수명 연장에 따른 노년기의 연장 결과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수발문제에 대한 독일의 사회보험 방식을 통한 문제해결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에게 하나의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하리라 사료된다.
II. 사회보험으로서 수발보험의 등장
1. 수발(Pflege) 용어의 의미와 인구구조의 변화
1) 수발의 용어의 의미
독일어 “Pflege”라는 단어는 ‘보살피고 도움을 준다’는 뜻으로서 일본어의 “개호(介護)”와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개호란 “개조”(Support)와 “간호”(Nurse)라는 단어에서 한 문자씩 따서 만든 일본식 합성어이다. 따라서 개호란 질병이나 고령화로 심신기능이 저하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가 불가능한 사람을 돌본다는 뜻이라 할 수 있다. 개호라는 단어가 일본에 처음 등장한 시간은 1963년 일본 노인복지법 제정과 관계가 있다. 노인복지법의 제정으로 노인홈 체계가 새롭게 구축되었고 그 모델이 바로 “nursing home”이다. 개호(介護)라는 용어는 “원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영어의 care1)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일본 사회복지사전(1974년)에는 개호를 “질병, 상해 등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경우 개조하는 것과 신변을 원조하는 것이라 하고 있다. 그러나 개호라는 일본 용어를 한국식 발음으로 표기한다고 해도 여전히 그 개념이 낯설기 때문에 필자는 우리말인 수발2)이란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3).
〈표-1〉 독일 노인의 연도별 인구추이
연도 내용 | 1950 | 1960 | 1970 | 1980 | 1990 | 2000 | 2010 | 2020 | 2030 |
전체인구 (천명) | 69,300 | 73,100 | 78,100 | 78,400 | 79,800 | 82,000 | 81,500 | 80,300 | 78,000 |
노인인구(%) | 9.4 | 10.9 | 13.2 | 15.0 | 15.2 | 16.5 | 20.2 | 21.5 | 22.8 |
평균수명(세) | 66.3 | 69.3 | 72.1 | 74.0 | 75.9 | 76.8 | 78.4 | 79.5 | 80.3 |
자료: Statistisches Bundesamt, 2000: 10; Klie, 2001: 266.
2) 독일 인구변화의 상관관계
지난 40년간 독일의 인구구성비에 나타난 변화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청소년층 인구의 감소와 노년층 인구의 증가 현상을 꼽을 수 있다. 1950년경 전체 인구에서 15세 미만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3.3%였는데 2010년까지는 15%로 감소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비해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은 9.4%(1950년)에서 20%(2010년)로 증가될 전망이다(Statistisches Bundesamt, 2000: 10). 이는 1871년 65세 이상 인구층이 4.6%에서 2002년 현재 16.5%로 상승한 비율만 보더라도 변화의 다각도를 알수 있다(Voges, 2002: 61). 특히 1998년 기준으로 독일인구 100명 가운데 20세 미만인 아동과 청소년은 21명이고, 20-60세 사이의 인구는 56명이지만, 60세 이상은 23명으로서 나타나 있다. 이는 2050년경 전체 인구의 ⅓이 60세 이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노년층 인구비중에 대한 사회적 보장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다는 단적인 일례라 할 수 있다(Bundesnistitut für Bevölkerungsforschung, 2000: 11). 더욱이 출생률의 감소와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되었는데, 그 중에서 당사자인 노인들과 직결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수발 및 간병문제라 하겠다. 나이가 들수록 질환이 많아지고 또 노쇠로 독자적인 활동이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노쇠로 인한 활동곤란을 모두 병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노화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에서 비롯되어 그 편견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간병비용을 충당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쉽지 않다는 현실 경제적인 문제가 대두되었다. 더욱이 노인세대들의 경제적인 여건이 현재보다 나아지기보다는 오히려 반대의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더 높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노인들은 생산활동에서 벗어남으로써 연금 이외에 달리 소득을 얻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의 연령별 인구분포로 볼 때 갈수록 젊은 세대 인구비중이 줄어드는 것을 감안한다면 생산력의 발달이 얼마나 높아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따라서 현실을 기준으로 직시할 때 부양되어야 할 노인들 수에 비해 부양해야 할 생산활동 세대의 수가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에 노인 1인당 받을 수 있는 연금의 액수 혹은 그 연금의 구매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못할 경우 사회가 총체적인 혼란에 빠질 가능성마저 우려되어 독일에서는 지난 1970년대부터 새로운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노인의 수발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 강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2. 독일 사회보험의 변모
흔히 독일은 철학, 프랑스는 시민혁명(또는 시민정치), 영국은 산업혁명 그리고 미국은 자신들의 개척정신 위에 자본주의를 선택하여 사회복지 제도를 생각하는 시스템이 발전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독일의 근대사를 가리켜, 18세기 후반은 문화의 시대요, 19-20세기 이후는 경제 시대라고 구분하여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독일의 사회보장 시스템은 크게 “사회보험”(Sozialversicherung)과 “사회부조”(Sozialhilfe) 두가지로 분류된다.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혜택을 받기 위해 본인 부담의 전제 여부에 있다. 보험의 경우 각자의 수입 정도에 따라 보험금을 내야 하지만, 사회부조는 그러한 부담금 없이 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정부차원에서 구호를 제공하는 것이다. 즉, 사회부조는 보험에 들지 못하여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주 대상으로 하며, 스스로의 능력과 보험에 의한 생계가 부족한 사람들도 사회부조의 혜택을 받게 된다(〈표-2〉참조).
독일이 사회보험에 관심을 갖게 된 연유는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산업화가 늦게 시작되었지만 19세기 말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과 산업 분야의 막대한 팽창이 이루어졌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특히 1871년 통일국가를 수립했지만 국가 ―자본가계급의 지배연합―에게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노동자계급이 주변에 놓여 있었던 불안정한 시기였다. 세계 최초로 1867년 창설된 독일 사회주민주당은 생산수단의 즉각적 사회화를 요구하는 급진적 강령을 채택하고 1871년의 파리코뮨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국가 통일을 막 이루고 주변 국가를 추격해야 하는 후발 산업국가로서 독일에서 사회주의 정당의 이러한 강경노선은 크나큰 정치적 위협요소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당시 프리드리히 2세 아래서 실권을 잡아 독일 통일을 이룩해낸 철혈재상 비스마르크(Bismarck, 1815-1898)는 사회 및 생활 변화로 인한 국민들의 동요를 무마하기 위한 법적 장치와 강력한 정책적 조치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던 것이다.
급격히 증가한 노동자의 수에 따라서 노동조합들이 생겨나고 또 노동운동이 점차 격화되자 비스마르크는 강경과 회유, 즉 “사탕과 채찍”(Zucker und Peitsche)이라는 이중적 정책을 고안해 냈는데, 바로 ‘사탕’에 해당되는 것이 당시의 사회보험 제도라 할 수 있다. 노동자계층의 장래, 즉 퇴직 후 노후생활의 생활보장기능을 국가가 담당한다면 노동자들은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다시 등을 돌리고 국가에 충실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발상을 했던 것이다.
그러한 필요에서 1883년 질병보험(Krankenversicherung), 1884년 근로자 재해보험(Unfallver-sicherung), 1889년 양로 및 폐질보험(Rentenversicher-ung) 등이 차례로 제정되었고, 이들이 바로 세계 최초의 사회보험이라 할 수 있다4). 기존의 사회, 정치질서 속에서 산업화의 부산물로 생겨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들을 통합하려는 의도로 마련된 비스마르크의 이러한 사회 정책은, 진정한 사회개혁, 즉 자원의 공정한 재분배라든가 또는 인권 및 인간 존엄성의 확보 차원과는 사실 거리가 먼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비스마르크에 의해 시작된 사회보험 제도는 시대와 상황에 따른 변화와 개선과정을 수없이 거치면서 오늘날 독일의 사회복지 정책, 특히 사회보장 제도로 이어졌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독일의 법은 개선의 필요에 따라서 그때그때 보완 또는 새로운 입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회보장에 대한 그 체계가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하지만 그 근간은 의료보험․연금보험․재해보험 및 실업보험의 네 가지 기본 줄기를 갖춘 사회보험과 사회부조라 할 수 있다. 여기에 1995-1996년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수발보험이 보충되면서 이제 독일의 사회보험에 기본 줄기는 다섯 가지가 되었던 것이다.
독일의 사회보장 시스템 중에서 사회보험이 갖는 중요성은 소득의 재분배가 다른 어느 국가보다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체계를 살펴보면 <표-2>와 같다.
<표-2> 사회보장 체계에 대한 조망
생명의 위험 | 질병/노동능력부재/임신/기타 | 직업병 환자 | 노인/생계-직업능력 없음 | 실 업 | 수발의 경우 | 특수한 피해로 건강 침해를 입은 경우 | 기타 부담 |
담당 보험 | 의료보험 | 재해보험 | 연금보험 | 실업보험 | 수발보험 | 원호담당 행정부서 | 여러 종류 행정부서 |
실시 연도 | 1883년 | 1884년 | 1889년 | 1927년 | 1995년 | 각 내용에 따라 다름 | 각 내용에 따라 다름 |
재원 | 각 해당자의 보험료와 세금 | 세 금 |
<이러한 조치로도 구제되지 못하는 경우 아래의 사회부조에서 보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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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조
전 제 | 충분치 못한 소액 소득, 충분치 못한 소액 재산, 무직, 부양자 없음 |
활동업무 | 생계비 보조, 특별한 상황(수발, 노년)에 대한 보조 |
해당법 | 연방사회부조법 |
재 원 | 세금(각종 단체 후원금) |
자료 : Klie, 1996:213.
3. 가족구조 변화에 따른 수발보험의 탄생과 필요성
독일연방하원과 상원에서 1993~94년에 제정된 연방사회법의 XI장은 “수발 대상자의 위험에 대비한 사회 보장법-수발보험법이다. 이것이 곧 수발보험을 공식적으로 탄생시키는 입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의료보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수발보험을 의료보험에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는 독일의 공적 의료보험 자체에서 노인성 만성질환을 일반적 의미의 ‘병’이 아니라 신체적 기능의 저하에 따른 자연적 현상으로 간주하여 의료보험 급여에서 제외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발보험에 필요한 업무는 의료보험에서 함께 다루고 있고 보험료 산정과 수발 단계의 판정 등 의료보험의 업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표-3〉 독일가족의 가구현황